SSD 대란 온다 … "주문량 1년치 밀려"
장소희 반도체전문기자
입력 2025-10-28 10:41수정 2025-10-28 10:55
AI·클라우드 수요 폭증에 SSD 라인 '풀가동' … 일부 모델 납기 1년 넘어
HDD 한계 뚜렷 … 데이터센터·서버 시장서 SSD로 급속 전환낸드 가격 반등 맞물려 공급 부족 심화 … D램 잇는 수익처로 부상
"SSD는 더 이상 대체재 아냐" … 저장장치 시장 패러다임 변화
AI(인공지능)와 클라우드 서비스 확산으로 글로벌 SSD(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데이터센터와 서버 업체들이 고성능·고용량 SSD 확보에 나서면서 일부 제품은 주문 후 납기가 1년 이상 밀리는 모습까지 나타난다. HDD(하드디스크드라이브) 중심이던 저장장치 시장의 축이 완전히 SSD로 이동하는 계기가 마련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28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주요 낸드플래시 제조사인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키옥시아 등은 SSD 생산 라인을 최대치로 가동 중이다. AI 서버용 스토리지 수요가 예상치를 크게 웃돌면서 재고가 빠르게 소진되고 있고, 글로벌 클라우드 사업자들의 신규 주문까지 겹치며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특히 8테라바이트(TB) 이상 고용량 제품군은 내년 하반기 물량까지 이미 대부분 예약된 것으로 전해진다.
SSD는 데이터를 회전 디스크에 저장하는 HDD와 달리 낸드플래시 메모리에 직접 저장한다. 구조적 특성상 데이터 접근 속도가 수십 배 빠르고 전력 효율이 높으며 발열과 소음이 적다. 업계에서는 AI 학습이나 추론 등 방대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해야 하는 환경에서는 결국 SSD로 전환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데이터센터 신규 스토리지 중 SSD가 차지한 비중은 62%로 처음으로 HDD를 앞질렀다. 올해는 그 비중이 7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또 다른 시장조사업체 가트너 역시 AI 서버 한 대당 SSD 탑재 용량이 전년 대비 30% 이상 증가했고 HDD 수요는 3년 내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낸드 가격 반등도 SSD 공급난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2023년까지 침체기를 겪던 낸드 시장은 올해 초부터 반등세로 돌아섰다. 특히 엔터프라이즈(기업용) SSD에 쓰이는 고단(200단 이상) 낸드 제품의 단가가 크게 오르면서 낸드 공급업체들이 생산 계획을 조정하고 있다. 낸드 가격이 20% 이상 상승했음에도 주요 고객사들은 물량 확보를 위해 선주문을 확대하고 있다.
국내 업체들도 대응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는 데이터센터용 PCIe 5.0 인터페이스 기반 SSD 신제품을 연이어 출시하며 수요 대응에 나섰다. 미국과 유럽 주요 클라우드 사업자들과의 장기 공급 계약을 확대하고 차세대 300단 낸드 양산 체계도 준비 중이다. SK하이닉스는 자회사 솔리다임을 통해 북미 데이터센터 시장 점유율을 높이며 AI 서버 전용 SSD 생산라인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반도체업계는 SSD 수요 급증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인 변화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HDD는 여전히 저비용 대용량 저장이 필요한 백업용이나 감시용 서버에서 제한적으로 쓰이지만 성능 중심의 메인 스토리지 시장에서는 경쟁력을 잃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시게이트와 웨스턴디지털 등 기존 HDD 강자들도 생산라인을 축소하거나 SSD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하고 있다.
이번 변화를 단순한 저장장치 교체가 아닌 반도체 산업 구조가 재편되는 신호로도 해석한다. 낸드의 수요가 급격히 늘면서 D램 중심이던 메모리 산업 내 수익 비중이 달라지고 있고 AI 서버에서 SSD 채택률이 높아지는 게 내년 낸드 수요를 연평균 25% 이상 끌어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1년치 주문이 밀리는 SSD 품귀 현상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AI 시대를 뒷받침할 스토리지 패러다임이 HDD에서 SSD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라고 해석했다.